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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에서 내린 날, 혼자 걷는 역사 속 하루

by danbeeya 2025. 4. 25.

경주역에서 내린 날, 혼자 걷는 역사 속 하루

 

1. 기차에서 내린 순간,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따라 마음도 점점 가벼워진다. 도시의 분주함이 멀어질수록 나도 모르게 숨이 깊어지고, 하루를 조금 느리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주역에 도착한 순간, 마치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환승도 없고,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조용하고 단정한 역. 혼자 여행 온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출발점이 있을까? 기차역을 나서자마자 낯선 풍경이 반긴다기보단,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에 다시 온 것 같은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게 바로 경주만의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고즈넉한 돌담길,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산세, 그리고 바람이 부드럽게 스치는 거리. 걷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2. 황리단길, 나 홀로 산책하기 좋은 감성 거리


기차역에서 천천히 걸어서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황리단길은 혼자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예쁜 카페와 독립 서점, 그리고 감각적인 편집숍들이 모여 있어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도 아깝지 않은 거리.

사람 많은 거리지만 혼자 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혼자 걷는 사람들, 혼자 앉아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더욱 편안하다. 카페 한 곳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커피 향, 어쿠스틱 음악, 그리고 느릿한 발걸음들. 나도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오래 머무르지 않아도 괜찮다. 황리단길은 천천히, 그러나 가볍게 머물기 좋은 곳이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무게감 없이, 그저 나를 위한 짧은 산책이 되는 느낌.

 

3. 대릉원과 첨성대, 역사의 한가운데서 나를 마주하다


카페를 나와 조금 더 걸으면 대릉원이 나온다. 거대한 고분들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이 잠시 멈춘다. 말없이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누구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인증샷을 찍을 필요도 없다.
그저 걸으며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는 느낌.

첨성대 근처의 잔디밭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아이들은 뛰놀고, 연인들은 사진을 찍고, 나처럼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혼자 앉아도 외롭지 않은 풍경. 이건 아마 경주가 가진 독특한 조화 덕분일 것이다.

유적과 자연이 공존하고, 고요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이 도시의 매력.

날이 좋다면 근처의 계림 숲까지 이어서 걸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산책하듯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정리된다.

 

4. 석양과 함께 마무리하는 하루, 혼자의 시간이 더욱 깊어지다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 경주 월정교로 향했다. 야경 명소로도 유명하지만, 혼자 보는 일몰도 꽤 운치 있다. 다리 위에 서서 멀리 노을이 번지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괜히 감성에 젖는다.
여행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남겨두는 기록이라는 생각.

월정교 앞 작은 벤치에 앉아 하루를 돌아본다. 오늘 하루,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나의 감정과 생각, 걸음 하나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카메라 셔터보다는 내 눈으로 담아낸 풍경들, 메모 앱보다 마음속에 저장된 감정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혼자 여행을 떠나면 뭔가를 이뤄내야 할 것만 같고, 특별한 무언가를 경험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이런 평범한 하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용히 걷고, 느끼고, 쉰 하루.

혼자 떠난 경주, 나를 위한 하루
혼자 기차를 타고 도착한 경주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도시였다. 걷는 내내 조용히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하루 종일 나와 대화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경주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관광지도 좋지만, 그냥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이 도시에서는 특별한 여행이 된다. 때론 말없이 바라보고, 조용히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다음에 또 혼자 걷고 싶은 도시가 어디일까 생각하며, 다시 경주역으로 향했다.
이제는,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오늘을 다시 꺼내어 천천히 되새길 시간이다.